- 그레덴스AU. 성직자 그레이브스x신자 크레덴스
- 특정 종교를 비하,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가벼운 2차 패러디로 봐주세요.
- 글 중간중간에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구절들을 사용했습니다. (직접인용, 간접인용)
- 후반부에 나오는 문장 중 일부는 모리조님이 쓰신 멘션에서 인용했습니다. 사용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천 음악: nier ost - grandma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나는 한손에 성경을 들고 단상 위에 오른다.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을 통해 전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신자들은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어느 순간 나의 눈은 성경도, 십자가도 아닌 그 아이를 담는다. 앞에서 세 번째, 통로 끝자리가 아이의 지정좌석이다. 불편하게 몸을 웅크린 아이는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한다.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꾹 감은 눈이 절박하다. 내 입은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읊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신부님.”
아이는 늘 가족들과 함께였다. 아이의 앞엔 늘 그의 어머니와 어린 두 여동생이 서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미사가 끝나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신자로 한 번도 주일기도를 빠진 적이 없었다. 신자들의 말로는 그녀는 시청 앞 광장에서 이 땅에 숨어든 사특한 마녀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연설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우러르며 기도를 올린다.
“하루 빨리 마녀들을 몰아낼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나는 언제나 같은 기도로 답한다.
“하나님께서 항상 보살펴주실 겁니다.”
불경하게도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때조차 나는 아이를 본다. 어머니의 뒤에, 어린 두 여동생들의 뒤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서 바닥만 보는 가련한 아이를. 어렴풋이 보이는 눈꺼풀 안의 검은 눈동자와 방금 전까지 절실하게 기도하던 손을. 하얀 셔츠 밑으로 보이는 툭 튀어나온 뼈와 희게 질린 손목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신자님.”
오늘 아이는 혼자였다. 긴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내가 미사 중 성경 구절을 버벅거리던 이유였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혼자 오셨군요.”
“네. 어머니는 오늘 일이 있으셔서 못 오셨어요.”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인가. 나는 밤마다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말을 거는 내 모습을 상상해왔다. 아이와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나누는 나를, 아이와 마주보며 웃는 나를, 아이와 함께 있는 나를. 비록 아이는 나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지만 꿈꾸던 순간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왔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묵주를 아이에게 건넸다.
“신자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언제나 눈꺼풀 밑에, 숙인 고갯짓으로 감춰졌던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 안개처럼 끼어있는 두려움과 숨길 수 없는 일말의 호기심.
“신자님은 항상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리시더군요. 제가 쓰던 거긴 하지만, 신자님의 기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묵주를 공손히 받아든다. 오래되어 빛이 탁해진 묵주인데도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가슴이 벅차온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아이를 처음 본 건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한손에 성경을 들고 단상위에 올랐으며 나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신자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날 달라진 거라곤 세 번째 줄에 앉은 신자가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아닌 처음 보는 가족이었다는 점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어머니와, 아침의 잠기운을 없애지 못한 두 자매와,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 아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신자들이 모두 함께 읊조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아이는 눈을 떴고,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음 주일에는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아이의 어머니와 그의 자매들은 왔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나는 미사 내내 아이의 빈자리만을 바라보았다.
미사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그녀는 나에게 묵주를 내밀었다. 내가 아이에게 주었던 묵주였다.
“크레덴스가 이걸 훔쳐왔더군요.”
“신자님, 오해가 있으셨군요. 그 묵주는 제가 아드님께 드린 것입니다.”
“……신부님이 주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처럼 올리던 마녀 사회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기도도 없이 그녀는 황급히 교회를 빠져나갔다. 어머니의 뒤를 쫓던 자매들 중 더 어린 소녀가 나에게 말했다.
“크레덴스에게 함부로 뭘 주지 마세요.”
이 소녀가 무엇을 알 리가 없는데도. 나를 꾸짖는 듯했다. 밤마다 죄의식도 없이 아이를 갈망하던 나를. 눈은 몸의 등불이니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말기를. 내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으니 아이에게 보물을 주지 말기를. 기를. 이 와중에도 아이의 이름이 크레덴스라는 사실에 애정을 느끼지 말기를.
그럼에도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다음 주일에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전보다 더 움츠러져 있었고 감히 십자가와 눈이 마주칠까 단상 위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기도를 올리는 두 손으로 묵주를 꼭 쥐고 있었다. 바랜 검정빛이 시린 아이의 손 위에서 빛난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아이의 어머니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몰래 나를 찾아왔다.
“이거 돌려드릴게요. 죄송해요.”
아이는 나에게 묵주를 건넸다. 검은 묵주를 올린 손바닥에 언뜻 깊이 팬 상처가 보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아이의 손가락을 손수 접어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그의 가슴위로 밀어주었다. 아이는 가슴에 손을 올린 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도로 손을 놓았다. 손에는 아직 감각이 남아있다. 얼음장같이 차갑고, 생각보다 거친 감각이.
“괜찮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잘 설명 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치만…….”
“또 다시 그런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와도 좋습니다.”
나는 순간 직감한다. 나의 기도는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닌 땅에 발을 디딘 이 아이에게 올리겠구나. 오직 아이를 위하여 땅 위에 보물을 쌓아두겠구나. 오로지 신을 향하던 사랑과 경배를 이 아이의 발밑에 두겠구나.
“제가 항상 살펴드리겠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